n포 세대라 불리던 90년대생의 '0원으로 간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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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고 사회는 나를 N포 세대라 불렀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당시 친구들은 어렵사리 취업해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했던 반면, 나는 헬조선 탈출을 목표로 인턴십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해외로 나갈 기회만 절치부심하며 알아보던 중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보다, 하루빨리 남들보다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그 절실함의 기저엔 무한 경쟁 사회인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불안, 사랑하고 가정을 꾸릴 기본 욕구마저 박탈당한 좌절감, 다른 나라에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판타지가 깔려 있었다. 

결국 2016년 졸업 전 목표를 이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라는 북유럽 스웨덴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학하러 떠난 것이다. 그런데, 정착을 목표로 떠났지만 2년 후 주어지는 졸업 구직 비자도 마다하고 자진해 귀국했다.

이유? 바로 '가족'이었다. 스웨덴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가족과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소한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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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언제였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10대 때는 학교나 학원 근처에서 식사를 때웠고, 서울로 대학 진학 후 10년 넘게 자취했다. 13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서 자식 둘을 뒷바라지한 엄마와의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나이 드는 엄마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날 테고 결혼하면 내 가족이 생길 텐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 귀국 동기는 충분했다.

그래서 귀국한 뒤 엄마와 1년 반 동안 함께 살았다. 덕분에 시시콜콜한 추억도 많이 쌓았고, 특히 매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결혼과 동시에 이주를 고민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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