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도쿄 어때? 400엔으로 느린 여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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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일상을 느리게 여행하기

20년 전 도쿄에서 살던 때가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에겐 모든 것이 비싸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도쿄가 서울보다 저렴하게 느껴진다. 엔저의 이유도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 비해 한국의 물가가 크게 상승한 영향이 크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에서 비싼 것은 교통비다. 도쿄 전철의 기본요금은 180엔인데, 구간마다 가격이 오르는데다 노선마다 따로 요금을 내야 한다. 환승이라도 하면 편도 300~400엔이 훌쩍 넘기도 한다.
 
이렇게 비싼 도쿄의 교통비지만, 400엔만 내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2024년 4월 기준). 바로 도덴 아라카와선(都電荒川線)의 일일 승차권을 사는 것이다. 도덴 아라카와선은 지면 위를 달리는 한 량짜리 노면 전차다. 노면 전차는 전기로 운행되기에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간 노면 전차지만, 아직 도쿄의 서북쪽에서는 훌륭히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여행자에게도 이 노선은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코스다. 이 전차가 달리는 와세다 역에서 미노와바시 역까지의 구간은 도쿄 사람들의 일상으로 녹아들어갈 수 있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이 많은 관광지를 찾기보다 천천히 걸으며 일상의 발견을 즐기는 여행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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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다, 와세다(早稲田) 역

도덴 아라카와선 전차 여행의 매력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인생은 청년이다. 도덴 아라카와선의 시발역인 와세다 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와세다 대학이 나온다.

바쁘게 오가는 대학생들을 따라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면 두부처럼 하얗고 네모난 건물을 물결 같은 목조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와세다대 국제문학관, 하지만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으로 불린다. 이 대학 졸업생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증한 친필 원고와 서적, 음반 등으로 세워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68년 와세다 대학 제1 문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처음에 소설가가 아니라 각본가를 꿈꿨다고 한다. 이 국제문학관은 그가 즐겨 찾던 연극박물관의 바로 옆 강의동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건축가 쿠마 겐고는 독자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을 형상화해 물결 모양의 목재 구조물과 터널 같은 내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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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의도대로 마치 빨려 들어가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을 연결하는 거대한 아치형 나무 계단 책장이 나온다. 이 책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책들뿐 아니라, 각 나라의 영화감독이나 작가들이 소개하는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한국의 이창동 영화감독이 추천한 책도 소개되어 있었다.

지하 1층에는 작가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과 카페가 있고, 지상 1층에는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 라운지와 오디오 룸이 있다. 라운지에서는 그의 작품 연보를 볼 수 있어, 매일 꾸준하게 집필하는 소설가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2층은 방송 스튜디오와 기획 전시 공간, 3층은 연구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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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관은 분명 책이 주인공이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의 오디오 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증한 재즈 LP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오디오룸은 작가의 음향 자문인 오노데라 히로시게가 세팅한 곳으로, 작가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사운드 환경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 1층 카페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운영하던 재즈 카페 '피터캣'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기도 하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학 시절은 어땠을까? 그가 입학하던 1968년은 일본 내 대학에서 학생운동이 최고조로 달하던 시기였다. 개관 당시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이 건물은 한때 학생들이 "대학 해체"를 외치며 점거했던 공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 슬로건이 일방통행적인 가르침을 타파하고,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대학을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망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지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당시 청년들의 이상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인터뷰 출처: https://book.asahi.com/article/14450237).

지금 이 국제문학관의 슬로건은 "이야기를 발견하자, 마음을 전하자(物語を拓こう、心を語ろう)"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을 개관할 때,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내놓고 실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비록 그 시대 청년들이 외쳤던 슬로건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그 이상만은 이런 형태로 남아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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