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도시에 피어나는 문화예술의 꿈, 미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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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폐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워낙 낯가리는 성격이라 얼른 짐만 챙겼다. 시간을 보니 행사 30분 전이다. 리허설도 못 해보고 바로 공연할 판이라 마음만 더 급해졌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건물 안에 드니 이종헌 선생이 아이 같은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선생의 넉넉한 미소를 받고서야 부담감으로 쫀쫀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와서 보니 행사 규모가 제법 컸다. 삼척 도계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큰 행사를 거의 혼자 힘으로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선생의 모습을 보니 누가 저 양반을 그 기품 있는 옻칠 달항아리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로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헌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17년경이다. 당시 서울시청 갤러리에서 열린 '불휘 기픈 나무에 걸린 달', '새미 기픈 물에 비친 달'이라는 주제의 '달항아리' 전시회 때였다. 후배의 소개로 그때 처음 인사를 나눴고 전시회 작품 설치를 조금 도와줬었다. 그 작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선생과는 끊길 인연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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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헌 선생은 원래 불교미술을 전공한 화가로 채색화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한국회화의 시원을 찾아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던 중, 7세기 그려진 옻칠 벽화가 오늘날까지 보존된 점에 큰 감명을 받아 옻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선생은 중국을 비롯한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옻칠 연구와 옻칠작품 작업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옻칠 달항아리 작품들은 옻칠을 재해석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선생을 대표하는 작품세계가 되었다. 선생은 특별히 달항아리 옻칠작품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한 언론매체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달항아리는 과거 백성들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형태와 색이었다. 반면 옻은 지배계급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귀한 소재였다. 달항아리가 담고 있는 서민의 소박한 정서에 옻칠을 더해 예술적 완결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며,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다." -(2019년 7월 17일 법보신문 인터뷰)
 
이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과 예술관을 읽을 수 있다.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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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이종헌 선생을 처음 소개해 준 후배 결혼식이 있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때 지나가는 말로 도계전 행사와 공연에 대해 넌지시 말하길래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술김에 승낙하고 말았다. 결혼식 일주일 후쯤 선생에게 카톡이 왔다.
 
"선생님 이종헌입니다. 작년 제1회 도계전 반응이 좋아 올해 제2회 도계 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38명의 작가가 참가했고, 올해는 60여 명의 작가들이 참가할 것 같습니다. 전시는 폐교가 된 소달중학교에서 1달간 전시를 합니다. (...중략...) 오프닝에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의 멋진 춤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프닝에서 약 10분~15분 정도 축하공연을 해달라는 거였다. 난감했지만 뱉은 말이 있으니, 거절도 못 하였다. 부담감으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삼척 도계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다. 더군다나 춤을 부탁한 이 선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가끔 후배가 전해줘서 2년 전쯤 원주에서 삼척 도계로 이사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몰랐었다. 카톡 대화 뒤 선생은 자료들을 보내왔다. 그제야 비로소 선생이 하고자 하는 일과 삼척 도계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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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도계는 오지에 가깝다. 한때 탄광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석탄산업의 몰락과 그나마 있던 탄광도 내년이면 폐광될 예정이라 이곳은 점점 쇠락하는 도시가 되었다.
  
실제 둘러보니 도계의 겉모습은 한적한 여느 지방 소도시와 비슷했으나, 탄광도시를 대변하듯 광부들이 거주했던 적막한 사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쇠락하는 지역 도계에 들어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이 바로 이종헌 선생이다. 제1회 도계전은 선생의 그러한 꿈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었다. 제1회 도계전 도록 서문에는 선생이 도계를 바라보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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