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공원 | userparks.com

30년 만에 다시 찾은 절, 여전한 그 경이로움

작성자 정보

컨텐츠 정보

본문

나는 사학과 출신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학과는 취직과는 큰 인연이 없다. 요즘은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이 대변할 정도로 인기가 없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그래도 과 정원 60명을 넉넉히 채울 정도는 되었다. 사학과를 가면 답사를 간다. 선배들 말이 답사는 '사학과의 꽃'이라고 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던가 2학년 1학기던가, 전라도 쪽으로 답사를 갔다. 오래전 일이라 풍경이 어땠는지, 어떤 길로 갔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이미 오후 깊은 무렵이었다는 건 기억난다. 공주, 부여에서 벌써 많이 걸은 데다가 긴 버스 여행으로 이미 피곤했다. 졸다가 다시 움직이려니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내처 자고만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답사반 선배들과 교수님이 이끄는 대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우리나라에 이런 탑들이

갑자기 잠이 확 깼다. 눈앞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아니면 내가 아예 꿈속의 세계로 들어선 것일지도 몰랐다. 부처님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 아니면 극락이 이런 곳일까. 눈앞에 여기저기 석탑과 석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다 달랐다. 다를 뿐만 아니라 독특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탑들이 존재하다니….'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둥근 원반을 쌓아놓은 듯한 탑, 거대하고 투박한 돌로 된 방 안에 앉아 있는 석불, 마치 하늘에서 땅에 꽂아 놓기라도 한 듯 기단부 없이 기다랗게 서 있는 탑. 바위 벽면에는 부처가 새겨져 있고 지붕 같은 바위 밑에 석불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크고 작고, 어떤 석불은 일어서고 어떤 석불은 앉았다. 제각기 모양도 크기도 달랐지만, 그 얼굴들이 머금고 있는 평화만은 같았다.
796925316_sTjCSW3m_d0635df205ffb9721dbcac6f9070eb861043b3cf.jpg
 
저 표정, 무심한 듯, 관조하는 듯한 저 긴 자비로운 눈매와 입은 관음의 것일까, 아니면 석가의 것일까. 아니, 그도 아니면 부처에 대한 믿음을 품고 살아가던 옛 고려 사람들의 마음일까. 탑과 석불들을 지나 계속 산자락을 따라 올라갔다. 또다시 공간이 열렸다. 그곳에는 와불이 있었다. 두 개의 석불이 누워 있었다.

마치 부부인 양, 동기인 양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 작은 석불은 큰 동기 옆에 꼭 붙어 나란히 누워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크고 넓적한 바위 얼굴에는 고요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주변은 나무와 풀, 바위밖에 없었다. 관광객도 펜스도 없었다. 열반의 세계에 들기라도 한 듯 기이하면서도 평온했다.
796925316_8T1hwcum_06daaf498583ace016965597c0bb2597530172bd.jpg
 
그곳은 화순 운주사였다. 운주사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고려 초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폐사되었으나 이후 중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 큰 절의 모습은 없고 단지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대신 작은 사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체 내용보기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05 / 1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