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 갈 때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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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그 지역을 상징하고 시민들이 수호신처럼 믿고 의지하는 '진산(珍山)'은 있기 마련이지만 무등산(無等山)만큼 광주 시민들의 혼과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산은 드물 것이다.
광주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인 무등산은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통일신라 때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불리다가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렀다.
비할 데 없이 높아 등급을 매길 수 없으므로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 또한 없다는 뜻의 '무등(無等)'은 불교 경전에 나오는 '무등등(無等等), 무유등등(無有等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무등산은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는 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별칭으로 무돌산·무당산·무덤산·무정산 등 여러 이름 갖고 있는 무등산에는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규봉암 등 유서 깊은 천년고찰 들이 즐비하다. 이 사찰들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 까지도 광주 불교를 이끄는 중심 도량 역할을 하고 있다.
절 '사(寺)'가 아니라 집 '사(舍)' 자를 쓰는 절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래 무등산은 해마다 약 400만 명의 탐방객들이 방문한다. 무등산을 오르고 내릴 때 이들 중 약 8할 정도는 증심사 지구를 출발점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이때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절이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절'인지 '사당'인지 '정자'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문빈정사(文彬精舍)'가 그곳이다. 보통의 절 이름은 3자인데 반해 이 절은 특이하게도 4자이면서도 '절 사(寺)'가 아니라 '집 사(舍)' 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예로부터 무등산 증심사 계곡은 '절골' '무당골' 등으로 불리며 수많은 불교 유산과 전설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증심사 아래는 약간의 논과 밭이 있었을 뿐 온갖 잡초가 우거져 거의 버려진 땅이었다. 계곡에서는 매일 무당들이 굿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척박한 땅을 사들인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한국동란 때 평양에서 외동딸과 함께 남으로 피난 내려왔다. 온갖 고생을 해가며 광주 금남로에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으나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을 잃고 혈육이 끊어지게 되자 불가에 귀의한 장문빈(張文彬 1893~ 1987) 보살이다.
백양사 석산 스님에게 '보리심(菩提心)'이라는 법명을 받은 장문빈 보살이 증심사 계곡의 땅을 사들인 것은 순전히 꿈 때문이었다. 어느 날 장 여사의 꿈속에 증심사 아래에 있는 초가집 한 채가 나타났다. 다가가서 방문을 열었더니 방안에 염주가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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