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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의사로 불리는 이유.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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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의

비판정본(Critical edition)이 출간되었습니다


한자로 총 22,319자에 이르는 이 자서전은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약 3개월여간에 걸쳐 집필한 것이며,


“1910년 경술년, 음력 2월 5일, 양력 3월 15일,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기를 마치다.”

라는 문장으로 집필을 마치고


열하루 뒤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30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이 자서전은 일본인이 베껴 쓴 한문 필사본이

1969년에 최초로 발견되었고,


진본인 친필본은 아직까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64731c36-fdd9-458c-bce1-8dd0016d6e33.jpg<안응칠 역사> 필사본 일부



이번에 발간된 비판정본은

한국도서관친구들의 지회이자 2014년 독도책보내기 운동으로 시작된

독도도서관친구들 소속 시민회원 3,370명의 후원으로 제작되었고,


한문원문과 함께 전문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비판정본 링크: http://dokdodl.org/



관련하여 자서전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독립군 의병장 참모중장이었던 안 의사는


1908년 몇번의 교전을 통해 포획한 일본군 포로를

심문후 풀어주기로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일본군은 사로잡힌 우리 의병을 잔혹하게 살해하는데, 왜 우리는 풀어줘야 하느냐'며


의병 내부에서 반발이 일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현재 만국공법(萬國公法)은 ‘사로잡은 적병을 살육하라’라는 법이 전혀 없소.
적병의 이와 같은 포악한 행위는 신과 사람이 함께 노여워하는 것이거늘, 지금 우리도 야만적인 행동을 실행하길 바라는 것인가?
게다가 일본 4천만 남짓의 인구를 다 죽인 뒤에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계산인가?
지금 우리는 약하고 저들은 강하여 힘겹게 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충성스러운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 이토 히로부미의 포악한 책략을 성토하고 세계에 널리 알려 열강이 동감하는 뜻을 얻은 뒤에야 원통함을 갚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오.
이것이 이른바 ‘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거하고, 인(仁)으로 악(惡)에 대적한다’는 것이니, 여러분은 부디 여러 말 마시오.”



이후 의병은 며칠 뒤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처참하게 패배하였는데


포로를 풀어준 것에 불만을 품은 의병의 일부가 불복하여 병력이 분산되었고,


자서전에는 언급되어있지 않지만

풀어준 포로들이 작전을 누설한 것도 원인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ko.m.wikipedia.org/wiki/안중근)



이후 안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의병을 재결성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으며


이후 뜻을 함께하는 11명의 동지와 1909년에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같은 해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국군의 표어이기도 한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라는 말을 남긴 피끓는 애국지사이면서



동시에 약육강식의 현실에서도 동양평화론과 같은

이상적 평화체제를 구상한 사상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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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출처에서 글을 보다가

이런 분에게 아직까지도 군인 맞느냐는 둥 왜 의사라고 부르느냐 라는 둥

말같지도 않은 소리나 지껄이는 부고만 듣고 싶은 인간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아서 생각난김에 좀 더 찾아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An_Jung-geun.jpeg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거하고, 인(仁)으로 악(惡)에 대적한다"

            - 안중근 (1879~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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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저의 공원에 오신걸 환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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